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세계사 / 96 / 붉은 머리 에이리크 : 얼음의 땅에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붙인 남자

세계사

by danielsung 2025. 8. 27. 23:41

본문

반응형

 

 

 

 

“’붉은 머리 에이리크’가 아이슬란드에서 정착민 한 무리를 이끌고 서쪽의 미개척지로 간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케팅은 무엇이었을까요? 많은 이들이 붉은 머리의 바이킹, 에이리크(Eirik the Red)가 얼음으로 뒤덮인 거대한 섬에 '그린란드(Greenland, 초록 땅)'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꼽습니다. 그는 대체 왜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 이름에 이끌려 미지의 땅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성미를 가진 한 명의 살인자이자 무법자가 있었습니다.

 

 

 

갈 곳 없는 무법자, 서쪽으로 향하다

 

'붉은 머리 에이리크'는 그의 머리 색깔만큼이나 불같은 성미를 가진 노르웨이 출신의 바이킹이었습니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고향에서 추방당해 아이슬란드에 몸을 의탁했지만, 그곳에서도 분쟁을 일으켜 여러 사람을 죽이고 맙니다. 980년, 아이슬란드의 법정 '알팅'은 그에게 3년간의 추방령을 내립니다. 이제 그에게는 돌아갈 노르웨이도, 머무를 아이슬란드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고립된 에이리크는 배를 타고 서쪽,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향하기로 결심합니다. 약 60여 년 전, 군비요른이라는 바이킹이 폭풍을 만나 항로를 벗어났을 때 우연히 목격했다는 전설 속의 땅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서쪽으로 가는 것은 그의 마지막 도박이었습니다.

 

 

 

'그린란드'의 탄생

 

3년간의 추방 기간 동안, 에이리크는 미지의 땅을 탐험하며 정착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추방 기간이 끝나자, 그는 아이슬란드로 당당하게 돌아와 사람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땅은 초목이 무성하고 살기 좋은 곳이라며, 그곳의 이름을 '그린란드'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이는 물론 과장이 섞인, 치밀하게 계산된 이름이었습니다. 당시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경작할 땅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에이리크는 '그린란드'라는 희망적인 이름이 땅에 굶주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정확히 꿰뚫어 본 것입니다. 그의 전략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거의 천 명에 달하는 남녀가 새로운 삶의 터전을 꿈꾸며 그를 따라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새로운 희망, 그리고 혹독한 여정

 

986년, 총 25척의 배가 희망을 싣고 그린란드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하지만 거친 북대서양의 바다는 그들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험난한 여정 끝에 그린란드 남부의 안전한 피오르드에 무사히 상륙한 배는 단 14척뿐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배를 대기 안전하고, 물고기가 풍부하며, 가축을 기를 수 있는 완만한 구릉지가 펼쳐진 곳에 첫 번째 정착지를 세웠습니다. 몇몇 용감한 이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북쪽으로 650km나 항해하여 두 번째 정착지를 건설하기도 했습니다.

 

 

 

소빙하기로 인해 낙원이 사라져가다

 

놀랍게도, 정착 초기 그린란드의 기후는 지금보다 훨씬 온화했습니다. 정착민들은 소와 양을 키우고, 겨울 동안 가축을 먹일 목초를 충분히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 13세기의 한 기록에는 그린란드의 "넓고 훌륭한 목장"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짓고 주교 관구를 설립하는 등 안정적인 사회를 이루며 번성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낙원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14세기 중반, 기상학자들이 '소빙하기(Little Ice Age)'라 부르는 기후 한랭기가 닥쳐왔습니다. 여름은 짧아지고 겨울은 혹독해졌습니다. 목초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고, 가축들은 굶어 죽었습니다. 바다의 얼음은 두꺼워져 유럽과의 교역로를 막아버렸습니다. 서구 세계의 가장 먼 변방에 고립된 바이킹 정착지에서, 생명의 불씨는 서서히, 그리고 쓸쓸하게 꺼져갔습니다.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