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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 97 / 무너진 왕국을 구한 귀족, 위그 카페와 프랑스의 시작

세계사

by danielsung 2025. 8. 28.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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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작 위그 카페의 대관식은 카페 왕조의 시작이었으며, 근대 프랑스의 역사도 여기서 시작한다.”

 

 

 

 

 

 

 

 

 

10세기 말, 훗날 프랑스가 될 서프랑크 왕국은 절실하게 새로운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샤를마뉴 대제의 후광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의 후손인 카롤링거 왕조는 바이킹의 침략과 귀족들의 반란 속에서 이름뿐인 존재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바로 이 혼돈의 시대, 한 강력한 귀족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며 프랑스의 새로운 천년을 열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위그 카페(Hugh Capet)였습니다.

 

 

 

이름뿐인 왕, 조각난 왕국

 

당시 카롤링거 왕조의 왕권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였습니다. 북쪽에서 쉴 새 없이 밀려오는 바이킹 침략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왕의 무력함은 귀족과 백성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왕들은 자신을 지지해 줄 귀족들에게 점점 더 많은 땅을 떼어주며 권력을 유지하려 했고, 그 결과 왕국은 사실상 독립적인 공작령과 백작령들이 느슨하게 붙어 있는 조각보 신세가 되었습니다.

 

왕이 직접 다스리는 영토, 즉 왕령(Royal domain)은 파리 근교의 '일 드 프랑스(Île-de-France)'라 불리는 작은 지역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왕은 파리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다른 대귀족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왕을 만드는 가문, 로베르 가문

 

이러한 대귀족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인물이 바로 프랑스 공작 위그 카페였습니다. 오를레앙 부근에 광대한 영지를 소유한 그의 가문은 '강한 자 로베르'의 이름을 따 로베르 가문(Robertians)이라 불렸는데, 이미 왕을 배출한 경험이 있는 막강한 가문이었습니다.

 

위그의 종조부인 외드, 조부인 로베르 1세, 그리고 삼촌인 라울은 모두 무능한 카롤링거 왕을 제치고 귀족들의 선출을 통해 왕위에 올랐던 전적이 있었습니다. 즉, 위그 카페는 단순히 힘만 센 귀족이 아니라, 언제든 왕이 될 수 있는 정통성과 명분을 함께 갖춘 준비된 후보였던 셈입니다.

 

 

 

987년의 선택, 새로운 왕의 탄생

 

987년 5월,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왕인 루이 5세가 사냥 도중 낙마 사고로 후계자 없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좌가 비게 되자, 왕국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귀족들이 모였습니다. 이때 랭스의 대주교 아달베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는 귀족들 앞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무능함을 지적하고, 왕국을 이끌 새로운 인물로 강력한 힘과 리더십을 갖춘 위그 카페를 추천했습니다.

 

그의 설득은 주효했습니다. 귀족들은 더 이상 무능한 혈통에 왕국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고, 만장일치로 위그 카페를 새로운 왕으로 선출했습니다. 이로써 약 200년간 이어져 온 카롤링거 왕조는 막을 내리고, 프랑스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됩니다.

 

 

 

카페 왕조의 신의 한 수 : 공동 왕 제도

 

왕위에 오른 위그 카페는 자신과 선조들이 겪었던 불안정한 '선거 군주제'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은 뒤, 또다시 귀족들이 모여 다른 가문의 인물을 왕으로 뽑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프랑스 역사를 바꾼 '신의 한 수'를 둡니다.

 

대관식을 올린 지 불과 몇 달 뒤, 그는 귀족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아들인 로베르를 공동 왕으로 임명하고 대관식을 치르게 합니다. 왕이 살아있는 동안 다음 후계자를 미리 왕으로 인정받게 한 것입니다. 이 전략 덕분에 996년 위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왕위 계승을 둘러싼 그 어떤 분쟁도 없이 아들 로베르가 자연스럽게 단독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왕이 살아있을 때 상속자를 미리 공동 왕으로 즉위시키는 이 관행은 이후 카페 왕조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귀족들의 선거를 통해 왕을 뽑던 관습을 깨고, '왕위는 장남에게 세습된다'는 원칙을 확립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안정적인 계승 제도 덕분에 카페 왕조는 14명의 왕을 배출하며 1328년까지 약 340년간 프랑스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위그 카페의 선출은 단순히 왕 한 명이 바뀐 사건이 아니라, 근대 프랑스라는 국가의 진정한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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