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을 기다린 끝에, 오토 1세는 신성 로마 황제가 되려는 꿈을 실현한다.”
10세기 중반, 유럽은 새로운 영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독일의 왕 오토 1세(Otto I)에게서 과거 위대했던 샤를마뉴 대제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는 샤를마뉴가 그랬던 것처럼 아헨에서 대관식을 올리며 화려하게 즉위했고, 로마로 가 황제의 관을 쓰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까지, 오토는 무려 26년이라는 길고 험난한 시간을 인내해야 했습니다.
오토의 통치는 작센 지방의 풍요로운 은광에서 나오는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했지만, 그의 재위 기간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재정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왕국은 끊임없는 내분에 시달렸습니다. 독일 내 다른 공국들은 호시탐탐 그의 권위에 도전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오토는 즉위 초반의 대부분을 이들을 제압하는 데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전투 끝에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말썽 많던 공국들을 자신의 동생이나 아들 같은 가족들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내부의 적들을 정리하고 나서야 왕국에는 비로소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동쪽에서 마자르족이 쉴 새 없이 국경을 침범하며 그를 괴롭혔습니다. 오토는 안팎의 위협을 모두 이겨내고 자신의 입지를 완전히 굳히고 나서야, 비로소 로마를 향한 숙원을 이룰 기회를 잡게 됩니다.
962년, 마침내 때가 왔습니다. 당시 로마의 교황 요한 12세는 이탈리아 내의 정적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다급해진 교황은 알프스 너머의 강력한 군주, 오토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약 160년 전, 교황 레오 3세가 샤를마뉴에게 도움을 청했던 역사의 완벽한 재현이었습니다.
오토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원정을 떠나 교황의 적들을 손쉽게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위대한 약속을 받아냅니다. 962년 2월 2일, 교황 요한 12세는 오토의 머리에 신성 로마 황제의 관을 씌워주었습니다. 샤를마뉴 시대 이후 최초로 교황령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세속 군주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이로써 오토 1세는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해체될 때까지 약 850년간 지속되는 신성 로마 제국 계보의 첫 번째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된 이후에도 오토의 통치가 마냥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구해준 교황 요한 12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를 배신했고, 로마 교황청 내부는 끊임없는 음모와 파벌 싸움으로 얼룩졌습니다. 오토는 여러 차례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교황을 폐위시키고 새로 임명하는 등 교황권에 깊숙이 개입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문화의 꽃이 피어났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의 치세는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오토 르네상스(Ottonian Renaissance)'라 불리게 됩니다. 이 시기 독일 전역에는 수많은 새 성당이 웅장하게 지어졌고, 수도원에서는 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채색 필사본들이 다수 제작되었습니다. 전쟁과 정치적 암투 속에서도 예술과 신앙은 꾸준히 발전하며,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다채롭게 수놓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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