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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 92 / 정복왕을 낳은 바이킹의 왕, 프랑스의 공작이 되다

세계사

by danielsung 2025. 8. 2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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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초, 프랑크 왕국은 끝없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북쪽의 차가운 바다로부터 용의 머리를 한 배를 타고 나타나는 바이킹들은 왕국의 해안과 강변을 무자비하게 유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고 잔혹하기로 이름난 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롤로(Rollo)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885년 파리를 1년 넘게 포위하며 프랑크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바로 그 바이킹 함대의 우두머리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프랑크 왕국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잉글랜드를 정복하는 왕의 조상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끝나지 않는 악몽, '걷는 자 흐롤프'

 

롤로는 거대한 체구와 불같은 성미로 유명했습니다. 동료 노르만인들은 그를 \'걷는 자 흐롤프(Hrolf the Walker)'라 불렀는데, 그를 태울 만큼 거대한 말이 없어 늘 걸어 다녀야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약탈과 파괴가 뒤따랐고, 60년 이상 프랑스 북부 해안과 내륙 깊숙한 곳까지 그의 이름은 공포의 대명사였습니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왕들은 바이킹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막대한 양의 은과 금을 바치며 제발 물러가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는 굶주린 늑대에게 고기 한 점을 던져주는 것과 같았습니다. 돈을 받은 바이킹은 잠시 물러가는 척하다가, 이내 다른 곳을 공격하며 탐욕을 채웠습니다. 돈으로 평화를 사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었습니다.

 

 

 

단순왕 샤를의 파격적인 도박

 

911년, 롤로가 이끄는 바이킹 군대가 샤르트르 지역을 또다시 침략했습니다. 이때 프랑크 왕국의 왕은 '단순왕 샤를(Charles the Simple)'이었습니다. '단순하다'는 별명은 그가 어리석었다는 뜻이 아니라, 성격이 솔직하고 직설적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바이킹에게 돈을 바치는 무의미한 짓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파격적인 도박을 감행합니다.

 

샤를은 롤로에게 사신을 보내 상상도 못 할 제안을 합니다. 왕국 북쪽, 센 강 하구의 비옥한 땅을 통째로 넘겨줄 테니, 그곳에 정착해서 앞으로 다른 바이킹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늑대에게 양 우리를 맡기겠다는 발상과도 같았습니다. 왕국의 귀족들은 미친 짓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샤를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어차피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가장 강한 늑대를 길들여 다른 늑대들을 막는 방패로 삼겠다는 것이 그의 원대한 계획이었습니다.

 

 

 

해적에서 공작으로, 노르망디의 탄생

 

롤로는 이 제안을 깊이 고민했습니다. 평생을 바다 위에서 약탈자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안정된 땅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싶은 야망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마침내 왕의 제안을 수락했고, 생 클레르-쉬르-엡트(Saint-Clair-sur-Epte)에서 역사적인 조약을 맺습니다.

센 강 어귀 양편의 땅을 받는 대가로, 롤로는 샤를 왕을 자신의 봉건 군주로 섬길 것을 맹세하고, 기독교로 개종하여 '로베르'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이때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집니다. 봉신 서약의 관례에 따라 왕의 발에 입을 맞춰야 했는데, 롤로는 이를 모욕으로 여겨 거부했습니다. 대신 부하에게 시켰더니, 그 부하는 허리를 굽히는 대신 왕의 발을 번쩍 들어 올려 입에 맞추는 바람에 왕이 의자에서 발라당 넘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바이킹의 거칠고 독립적인 기질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그들이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님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조약이 체결된 후, 롤로는 처음에는 약속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쳐들어온 다른 바이킹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며 프랑크 왕국의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냈습니다. 그와 그의 부하들이 정착한 이 땅은 '북쪽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의 '노르망디(Normandy)'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정복왕을 낳은 위대한 유산

 

물론 롤로의 야망은 한 조각의 땅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약을 맺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933년에 이르러서는 오늘날 노르망디 지방의 지리적 경계선을 거의 완성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방패가 아니라, 스스로 강력한 국가의 주인이 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와 그의 후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이킹의 용맹함과 프랑크의 선진 문물을 결합하여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군사 국가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롤로의 피는 잉글랜드의 왕좌에까지 닿게 됩니다. 롤로의 직계 후손인 노르망디 공 기욤, 즉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이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최초의 노르만 왕이 된 것입니다.

 

한때 프랑크 왕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바이킹 약탈자는, 이제 한 나라의 시조이자 잉글랜드 왕가의 조상이 되어 역사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적에게 손을 내밀었던 '단순왕' 샤를의 대담한 결단이 유럽의 역사를 통째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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