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공격은 길고도 맹렬했으며, 마침내 신의 도움으로 그는 승리했다.”
_애서 주교, <앨프레드 왕의 생애>, 893년
870년대, 잉글랜드는 그야말로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차가운 바다를 건너온 '데인족(Danes)' 바이킹의 대군세는 마치 막을 수 없는 해일처럼 앵글로색슨족의 왕국들을 차례로 집어삼켰습니다. 한때 잉글랜드를 호령했던 머시아, 노섬브리아, 이스트앵글리아 왕국이 모두 그들의 발아래 무너졌습니다. 이제 앵글로색슨의 깃발이 휘날리는 곳은 남부의 웨식스 왕국,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희망의 불씨마저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878년 초, 웨식스의 왕 앨프레드는 수도 윈체스터가 아닌, 축축하고 외진 늪지대를 헤매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878년 1월, 크리스마스 축제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데인족의 교활한 지도자 구드룸(Guthrum)은 웨식스의 심장부인 윌트셔의 치펜햄 왕실 요새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앨프레드는 소수의 충신들과 함께 간신히 몸만 빼내어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 자신의 땅에서 숨어 지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가 숨어든 곳은 서머싯의 질퍽한 늪지대였습니다. 이곳에서 앨프레드의 절망과 인내를 상징하는 유명한 일화가 탄생합니다. 굶주리고 지친 채 한 농가에 몸을 의탁하게 된 앨프레드. 아낙네는 그가 왕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화덕의 빵이 타지 않도록 잘 지켜보라고 부탁하고는 자리를 비웠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잃은 슬픔과 복수심에 골몰하던 앨프레드는 빵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결국 빵은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죠. 돌아온 아낙네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듣는 왕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깊은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는 이 굴욕 속에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뜨거운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었습니다.
몇 달간의 은둔 생활 끝에, 앨프레드는 마침내 반격을 결심합니다. 그는 늪지대 한가운데 있는 애설니(Athelney) 섬에 새로운 요새를 쌓고, 흩어져 있던 지지자들을 규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의 운명을 바꿀 한 통의 메시지를 각지로 보냅니다. 햄프셔, 윌트셔, 서머싯의 모든 자유민들은 7주 후, '에그버트의 돌(Egbert's Stone)'이라 불리는 장소로 집결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소집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에그버트'는 바로 웨식스를 잉글랜드의 패권국으로 만든 위대한 선왕이자 앨프레드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건 집결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잠들어 있던 자부심과 애국심을 일깨웠습니다.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의 왕이 살아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녹슨 칼과 창을 들고 약속의 장소로 모여들었습니다. 도망자였던 왕의 곁으로, 잉글랜드의 마지막 희망을 지키려는 군대가 구름처럼 모여든 것입니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았습니다. 부활한 앨프레드의 군대는 데인족의 본거지인 치펜햄을 향해 진군했고, 에딩턴(Edington)이라 불리는 언덕에서 구드룸이 이끄는 데인족 대군과 마주쳤습니다. 당대의 연대기 작가인 애서 주교는 당시의 전투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방패 벽을 촘촘히 세워 오랜 시간 동안 격렬하고 용감하게 싸웠다."
전투는 말 그대로 혈전이었습니다. 앵글로색슨의 방패 벽과 데인족의 광전사들이 정면으로 충돌했고, 도끼와 칼이 부딪히는 소리, 병사들의 함성과 비명이 온 언덕을 뒤흔들었습니다. 전투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 모르는 치열한 접전 속에서, 앨프레드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최전선에서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의 가호였을까요, 아니면 왕국의 운명을 되찾으려는 앵글로색슨 병사들의 처절한 의지 덕분이었을까요. 길고 긴 싸움 끝에 데인족의 방패 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앨프레드의 군대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적들을 전장에서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살아남은 구드룸과 그의 전사들은 치펜햄 요새로 도망쳐 문을 걸어 잠갔지만, 앨프레드의 군대는 이들을 끈질기게 추격하여 요새를 완벽하게 포위했습니다. 식량도, 희망도 끊긴 채 14일을 버티던 데인족은 결국 백기를 들었습니다. 애서 주교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굶주림, 추위,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망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항복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두가 잔혹한 복수를 예상했지만, 앨프레드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그는 구드룸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첫째, 인질을 제공하고 다시는 웨식스를 침공하지 않을 것. 둘째, 즉시 웨식스 영토를 떠날 것.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셋째, 기독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을 것.
이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앨프레드는 구드룸의 대부가 되어 그를 기독교도로 만듦으로써, 단순한 적이 아닌 신앙 안의 형제로 묶어버린 것입니다. 이 승리로 인해 데인족은 잉글랜드 북부와 동부 지역, 즉 '데인로(Danelaw)'라 불리는 지역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앨프레드는 잉글랜드 남부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에딩턴의 위대한 승리는 앵글로색슨 잉글랜드의 멸망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훗날 앨프레드가 분열된 잉글랜드를 하나로 통일하는 위대한 서막을 연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세계사 / 91 / 혼돈의 시대에 피어난 영적 혁명, 클뤼니 수도원 이야기 (0) | 2025.08.21 |
---|---|
세계사 / 90 / 하나의 섬, 두 개의 왕국 : 앨프레드는 어떻게 바이킹과 잉글랜드를 나누었나 (2) | 2025.08.20 |
세계사 / 88 / 바이킹의 칼날 앞에 선 스물두 살의 왕, 앨프레드는 어떻게 잉글랜드를 구했나 (0) | 2025.08.19 |
세계사 / 87 / 센 강을 피로 물들인 바이킹의 도끼 (2) | 2025.08.18 |
세계사 / 86 / 샤를마뉴의 제국은 왜 세 나라로 나뉘었을까? : 베르됭 조약과 중세 유럽의 출발점 (0) | 2025.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