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와 다음 세계의 모든 존재에 안녕과 행복이 깃들기를.”
_아소카 칙령
마우리아 왕조는 고대 인도의 가장 강력한 왕조 중 하나로, 기원전 321년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창건하였습니다. 그는 난다 왕조를 무너뜨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수립하였으며, 이후 그의 아들인 비нд사라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하지만 마우리아 왕조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인물은 바로 제3대 왕인 아소카였습니다.
아소카(기원전 268년~232년 통치)는 초기에는 강력한 군사적 지도자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왕위를 계승한 후 마우리아 왕조의 영토를 더욱 확장하며, 당시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통치하는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칼링가 전쟁이었습니다.
아소카가 왕위에 오른 지 8년째 되던 해, 그는 동부 인도의 강력한 독립 왕국인 칼링가(현재의 오디샤 지역)를 정복하기 위해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칼링가는 마우리아 제국의 지배를 거부하며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고, 이는 아소카의 영토 확장 전략에 있어 중요한 걸림돌이었습니다.
전쟁은 극도로 참혹했습니다. 아소카 자신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로 인해 약 10만 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이 포로가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로 기록될 만큼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아소카는 폐허가 된 칼링가를 둘러보며 깊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정이 파괴되었으며, 지역 사회 전체가 붕괴한 모습을 보면서 그는 전쟁을 통한 정복이 과연 옳은 길인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소카는 자신의 정책과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 됩니다.
양심의 가책에 사로잡힌 아소카는 불교를 받아들이며 비폭력과 자비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전쟁과 군사적 정복을 중단하고, 대신 ‘다르마(법, 올바른 삶의 원칙)’를 기반으로 한 통치를 펼치기로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다르마’는 단순히 불교적 가르침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도덕적 삶의 원칙을 의미했습니다.
아소카는 이제부터 칼링가를 비롯한 모든 영토를 전쟁이 아닌 도덕과 정의로 다스리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다르마의 정복’을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우며, 백성들에게 선행과 자비, 동물과 인간에 대한 존중을 실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아소카는 자신의 사상을 백성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칙령을 반포했고, 이를 돌기둥과 바위에 새겨 제국 전역에 배포했습니다. 이러한 기념비적인 조형물은 오늘날 ‘아소카왕 석주’로 불리며, 총 33개의 석주와 바위 비문이 인도, 네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사르나트 석주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사르나트 석주’입니다. 이 석주는 붓다가 최초로 설법을 행한 장소에 세워졌으며, 원래 높이는 15m를 넘었습니다. 석주의 꼭대기에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네 마리 사자가 조각되어 있었으며, 이는 붓다의 가르침이 세상의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48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이 네 마리 사자가 새겨진 기둥머리는 인도의 국가 문장으로 공식 채택되었습니다.
전국에 퍼진 아소카의 칙령
아소카의 칙령은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도덕적 삶을 권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소카가 사망한 후, 그의 이상적인 통치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기원전 232년, 아소카가 세상을 떠나자 마우리아 제국은 급격히 쇠퇴하였고, 50년 만에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상과 업적은 후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소카의 불교 전파 노력 덕분에 불교는 인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종교적 관용과 사회복지 정책은 이후 인도의 여러 왕들과 지배층에 의해 모범 사례로 인용되었습니다.
아소카는 단순한 정복 군주에서 평화와 윤리의 상징으로 변모한 인물로,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 중 하나입니다. 그는 전쟁과 폭력을 통한 통치 대신, 자비와 도덕을 통한 통치를 선택하였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깊은 감동을 주는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칙령과 석주는 오늘날까지도 인도의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며,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들도 많습니다. 아소카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한 시대를 초월하는 철학자이자 지도자로 기억되며, 그의 이름은 인도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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