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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카르타고 : 신화 속 사랑과 지중해 제국의 운명

역사학

by danielsung 2025. 3. 1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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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는 위치상 지중해 연안 중심을 지배하기에 이상적이었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재미있게 알아보는 8번째 시간,

이번 시간에는 '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카르타고 유적
카르타고 유적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로마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른 카르타고는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흥미로운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d)》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카르타고의 건국 과정과 실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디도의 전설: 카르타고의 창립자

 

트로이 전쟁과 디도의 도망

카르타고의 건국 전설은 트로이 전쟁 이후의 혼란 속에서 시작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카르타고는 디도(Dido, 또는 엘리사)라는 페니키아의 공주가 세운 도시입니다. 그녀는 티레(Tyre)의 왕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여동생으로, 피그말리온이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자 나라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에 따라 디도는 충성스러운 신하들과 함께 지중해를 건너 현재의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피신합니다.

 

기발한 지혜로 땅을 얻다

디도가 도착한 곳은 오늘날 튀니스(Tunis) 인근의 튀니스 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지역의 원주민인 베르베르족(Berbers)에게 황소 가죽 한 장을 덮을 수 있는 크기의 땅을 요청합니다. 원주민들은 이를 허락했지만, 디도는 기발한 계략을 사용합니다. 황소 가죽을 얇게 잘라 긴 끈처럼 만들어 넓은 영역을 둘러싸게 한 것입니다. 이 계략을 통해 그녀는 언덕 전체를 차지하고, 그곳에 도시를 세우게 됩니다. 그 언덕이 바로 '비르사 언덕(Bursa Hill)'입니다.

 

 

 

트로이 왕자 아이네아스와 디도의 비극적 사랑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을 가른 만남

디도가 도시를 건설하고 안정된 통치를 이어가던 중, 트로이에서 탈출한 왕자 아이네아스(Aeneas)가 카르타고에 도착합니다. 아이네아스는 로마 건국의 전설적인 조상으로, 그의 후손이 훗날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입니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영원한 적대

디도와 아이네아스는 사랑에 빠지지만, 아이네아스는 신의 명령에 따라 이탈리아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디도는 절망에 빠지고, 아이네아스를 저주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백성과 아이네아스의 후손들(즉, 로마인들)이 영원히 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전설은 훗날 로마와 카르타고 간의 격렬한 대립을 설명하는 신화적 기원이 됩니다.

 

 

 

카르타고의 역사적 배경

 

페니키아인의 식민지로 출발

카르타고는 전설 속 디도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하지만, 실제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0세기부터 지중해를 누비던 페니키아인(Phoenicians)이 세운 식민지였습니다. 이들은 현재의 레바논 지역에서 온 해양 무역상들로,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 정착하면서 강력한 해상 도시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뛰어난 지리적 입지

카르타고는 낮은 언덕과 천연 호수를 가진 반도 지형에 위치해 있어 방어에 유리했습니다. 특히, 본토와 연결된 좁고 긴 지협이 있어 적들의 공격을 쉽게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은 카르타고가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대립: 포에니 전쟁

 

초기 경쟁과 긴장

카르타고는 번영하는 상업 도시로 발전하며, 특히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신흥 강국 로마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양국 간의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카르타고와 로마는 시칠리아와 사르디니아의 지배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며, 결국 포에니 전쟁(Punic Wars)이라는 대규모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의 멸망

로마와 카르타고는 총 세 차례에 걸쳐 푸니 전쟁을 벌였으며, 가장 유명한 사건은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Hannibal)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로마는 카르타고를 완전히 파괴하며 승리를 거둡니다. 기원전 146년,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함락하고, 도시를 철저히 파괴한 뒤 로마의 속주로 편입시킵니다.

 

 

 

카르타고의 유산

 

고고학적 증거와 역사적 평가

카르타고의 유적들은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으며, 당시의 번영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됩니다. 흥미롭게도, 카르타고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전설 속 건국 시기보다 100년 후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디도의 전설이 실제 역사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로마 제국과 카르타고의 영향

비록 카르타고는 멸망했지만, 그 문화와 유산은 로마 제국을 통해 일부 계승되었습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무역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해상 기술과 일부 행정 체계를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로마 제국 후기에는 카르타고 지역이 다시 중요한 도시로 성장하며, 기독교 시대에 들어서도 번영을 이어갔습니다.

 

 

 

결론: 신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도시

카르타고의 역사는 신화와 실제 역사가 절묘하게 결합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디도의 비극적인 사랑과 아이네아스의 운명적 이별, 그리고 로마와의 치열한 전쟁까지—이 모든 요소가 카르타고를 단순한 도시가 아닌,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문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카르타고의 유적과 전설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흥미로운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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