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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람세스 2세 :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역사학

by danielsung 2025. 3. 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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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위 기간은 세계역사의 첫 무렵을 장식한 가장 길고도 중요한 시기 중 하나였습니다.

 

 

세계의 역사를 재미있게 알아보는 4번째 시간,

이번 시간에는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람세스 2세

 

람세스 2세의 즉위와 제국 확장

람세스 2세의 긴 통치는 기원전 1279년, 제19대 왕조를 창시한 세티 1세의 서거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세티 1세는 이집트의 무역 영향력과 권력을 부활시켜 레반트 전역으로 뻗치게 했으며,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광대한 제국을 형성한 왕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히타이트, 리비아, 누비아 등 주변국들과의 외교 및 전쟁을 통해 이집트의 국경을 확장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람세스 2세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더욱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가데슈 전투와 히타이트와의 관계

기원전 1275년, 람세스 2세는 시리아의 가데슈에서 히타이트족과 유명한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 전투는 역사상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대규모 전투 중 하나로,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으며 승패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이집트와 히타이트 간의 권력 한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양국 간 최초의 평화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평화 조약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조약 중 하나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큽니다. 람세스 2세는 테베에 위치한 ‘라메세움’이라 불리는 파라오 장례 신전의 벽에 이 전투를 상세히 묘사하여 자신의 위업을 후대에 알리고자 했습니다.

 

대규모 건축 사업과 아부 심벨 신전

람세스 2세는 통치 후반기에 점차 강대해지는 아시리아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룩소르, 카르나크, 아비도스, 아부 심벨에서 광대하고도 흥미로운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하였습니다. 특히 아부 심벨에는 태양신 아문-레에게 바친 거대한 신전을 건설했으며, 이 신전은 거대한 암반을 깎아 만든 건축물로, 입구에는 람세스 2세를 본뜬 20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이 배치되었습니다.

아부 심벨 신전은 연 2회(2월 22일과 10월 22일) 태양광이 신전 내부의 신상에 도달하는 정교한 설계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람세스 2세의 생일과 즉위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1959년 나일강 아스완 댐 건설로 인해 이 지역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와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신전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는 대규모 복원 프로젝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현대 고고학과 문화유산 보존 역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람세스 2세의 가족과 개인 생활

파라오의 개인적 삶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려진 바는 많지 않지만, 그가 가졌던 가족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람세스 2세는 다수의 아내를 두었으며, 가장 총애했던 왕비는 네페르타리였습니다. 그는 네페르타리를 위해 ‘여왕들의 계곡’에 웅장한 무덤을 지어주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고대 이집트 미술과 건축의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네페르타리의 무덤 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그녀가 신들과 함께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람세스 2세는 100명에 달하는 자녀를 두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그의 많은 아들들 중 몇몇은 왕위 계승을 위해 교육받았지만, 대부분이 그보다 먼저 사망하였고, 결국 그의 13번째 아들인 메르넵타가 왕위를 계승하였습니다.

 

람세스 2세의 유산과 미라 발견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약 66년) 동안 통치한 파라오로, 그의 사후에도 그 영향력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신격화하였으며, 이후의 많은 파라오들이 그의 업적을 본받으려 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집트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시기를 경험하였으며, 이러한 유산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880년대, 데이르 엘-바이흐리 지역에서 미라화된 람세스 2세의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1970년대에 보존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현대 문명은 붉은 머리를 가진 강인한 체격과 메부리코를 한 왕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1976년, 람세스 2세의 미라는 프랑스로 보내져 보존 처리를 받았으며, 프랑스 정부는 그를 ‘이집트 국왕’으로 공식 대우하며 입국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었으며, 고대 왕이 현대에서 다시 한번 왕으로 인정받은 특별한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결론: 영원한 신화를 남긴 왕

람세스 2세는 단순한 군주가 아니라,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 인물입니다. 그의 군사적 업적, 건축물, 외교 정책, 그리고 문화적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로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그의 미라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며, 그의 건축물들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람세스 2세는 단순한 역사적 인물을 넘어, 이집트 문명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탐구되고 연구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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