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포스는 당대 가장 박식한 인물이자 저명한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를 부르도록 명했다.”
_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의 일생>
세계의 역사를 재미있게 알아보는 20번째 시간,
이번 시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마케도니아를 문화적으로 뒤떨어지고 야만적이라고 여기며 멸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356년,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필리포스 2세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는 마케도니아를 강한 군사 국가로 성장시키면서도, 그리스의 문화와 학문을 받아들이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기원전 342년, 필리포스 2세는 아테네 출신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로 초청해 13세 된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가정교사로 임명했습니다. 필리포스는 아들이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철저한 교육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500종 이상의 동물을 식별할 줄 알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3년간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며 정치, 수사학, 수학, 과학, 의학, 그리고 그리스 문학을 포함한 광범위한 교육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알렉산드로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이후 전장에 나설 때마다 이 책을 소지했다고 전해집니다.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의 전투 방식을 도입하여 마케도니아 군대를 개혁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국을 확장했습니다. 그는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아테네와 테베를 포함한 그리스 도시 국가 연합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18세였던 알렉산드로스는 이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투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가 암살당하자 마케도니아군은 즉시 20세의 알렉산드로스를 왕위에 올려 ‘알렉산드로스 3세’로 선포했습니다. 필리포스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통합한 후, 페르시아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마케도니아와의 동맹을 깨고 독립을 도모하려 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는 테베를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지만, 테베인들이 이를 거부하자 마케도니아 군대를 동원해 도시를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파괴했습니다. 주민들은 모두 노예로 팔렸고, 테베는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다른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강력한 경고가 되었고, 그들은 즉시 알렉산드로스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코린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리스 도시국가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아버지의 페르시아 원정 계획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이것이 곧바로 세계 정복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34년부터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해,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전투에서 혁신적인 전략을 구사하며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고, 정복지마다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35년 아테네로 돌아가 자신의 철학 학교인 ‘리케이온(Lyceum)’을 설립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논리학, 윤리학, 정치학, 생물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오늘날까지 ‘최초의 진정한 과학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36년, 딸 클레오파트라와 에피루스 왕 알렉산드로스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연회 중에 극장에서 암살당했습니다. 왕의 친위대원이었던 파우사니우스가 필리포스를 칼로 찔러 살해했고, 그는 곧바로 현장에서 다른 친위대원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이 필리포스의 아내 올림피아스의 음모였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1977년, 고고학자들은 그리스 북부 베르기나 유적지에서 필리포스 2세의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묘실 안에는 대리석 관, 눈부신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품들, 그리고 왕이 생전에 사용했던 훌륭한 갑옷이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필리포스 2세의 유골은 마케도니아 왕가의 상징인 ‘별’ 문양이 새겨진 황금 상자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마케도니아 왕국과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의 역사적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문화와 사상을 융합한 ‘헬레니즘 시대’의 창시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정복 활동을 통해 동서양 문화가 융합되었고, 그가 남긴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서양 철학과 과학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알렉산드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관계는 ‘교육이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넘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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