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철저한 집단 학살을 통해 라이벌 문명을 절멸한다.”
고대 전쟁사에서 도시의 완전한 파괴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원전 146년, 로마군이 카르타고를 철저히 무너뜨린 사건은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닌 정치적, 군사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로마 군단은 오늘날 튀니지 지역에 해당하는 카르타고를 철저히 함락시켰고, 주민들은 한 명도 남김없이 죽거나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도시의 모든 건물은 불태워졌으며, 카르타고의 번영했던 역사는 이렇게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카르타고는 한때 서부 지중해를 지배했던 해상 강국이었습니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년~146년)을 치렀으며, 이는 두 강대국 간의 지배권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로마가 승리한 후, 카르타고는 군사력을 제한당하는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카르타고의 부활 가능성을 끝까지 경계했습니다. 원로원 의원이자 웅변가였던 카토(Cato the Elder)는 로마에서 연설할 때마다 "카르타고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Carthago delenda est)"고 주장하며 지속적인 경계를 촉구했습니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평화 조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기원전 149년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포위했지만, 카르타고는 견고한 성벽과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어 쉽게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147년, 자마 전투에서 승리했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손자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로마군의 지휘를 맡으며 전세가 바뀌었습니다.
그는 철저한 봉쇄 작전을 펼쳐 도시를 고립시켰고, 결국 카르타고에는 극심한 식량난이 찾아왔습니다. 물자 공급이 끊긴 도시는 서서히 약해졌고, 저항할 힘을 점차 잃어갔습니다.
기원전 146년 봄, 로마군은 마침내 카르타고의 성벽을 돌파했습니다. 카르타고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전세는 이미 기운 상태였습니다. 생존한 약 5만 명의 주민들은 포로로 끌려갔고, 마지막까지 싸웠던 900명의 저항군은 신전에서 스스로 불을 질러 장렬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로마군은 약탈을 마친 후, 도시를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불을 지르는 방식이었으며, 도시 전체가 철저히 무너졌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로마군은 카르타고 땅에 소금을 뿌려 다시는 농사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도 전해집니다. 이는 로마의 철저한 보복을 상징하는 이야기지만, 역사적 사실 여부는 논란이 있습니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철저히 파괴한 이유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를 넘어섭니다. 이는 로마의 힘을 과시하고, 다른 도시들이 반란을 꿈꾸지 못하게 하려는 정치적 전략이었습니다. 로마는 이후 지중해 전역을 장악하며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카르타고의 폐허를 바라보며, 언젠가 로마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흐느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예감은 수백 년 후 현실이 되었고, 결국 기원후 476년,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카르타고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폐허가 된 도시 유적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한때 지중해를 지배했던 문명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카르타고의 멸망은 로마의 군사력과 정치 전략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카르타고의 파괴는 단순한 군사적 정복이 아닌 국가 간 경쟁과 적대감이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발생하는 비극을 상징합니다. 카르타고와 로마의 갈등은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된 반목과 불신에서 비롯되었으며, 결국 극단적인 방법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현대에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국가 간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 외교적 해법과 상호 존중이 필수적이며, 무력 충돌은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카르타고의 파괴는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확장을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전쟁이 한 도시와 문명을 어떻게 송두리째 사라지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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