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우마이야 왕조 : 무슬림 최초의 왕조
“칼리프 무아위야는 무슬림 세계의 지배권을 우마이야 왕조의 차지로 삼는다.”
이슬람 제국은 처음엔 신앙 공동체 중심의 통치 체제에서 시작했지만, 661년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피안의 즉위를 기점으로 세습 왕조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무아위야는 이슬람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가문 이름을 딴 왕조, 우마이야 왕조(Umayyad dynasty)를 창건하며, 중동에서 북아프리카, 스페인, 중앙아시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제국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무아위야의 정치적 배경과 왕조 수립, 세습제 도입의 의미, 그리고 우마이야 왕조의 확장과 멸망에 이르는 과정을 상세히 정리해보겠습니다.
무아위야의 반란 : 복수의 논리로 시작된 권력 도전
무아위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동료이자 제3대 칼리프였던 우스만 이븐 아판의 사촌으로, 당시 시리아 총독으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656년, 우스만이 반란군에 의해 암살되자, 무아위야는 우스만의 복수를 내세우며 당시 칼리프였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슬람 이전부터 아랍 사회는 부족 중심의 혈연 복수 전통을 중시했습니다. 무아위야는 “사촌 우스만을 죽인 자들을 알리가 처벌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고, 이는 그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정치적 명분이 되었습니다.
660년, 무아위야는 예루살렘에서 스스로를 칼리프로 선포하며 본격적인 권력 투쟁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661년 알리가 카와리지에 의해 암살되자, 알리의 지지자들(시아파)은 그의 장남 하산 이븐 알리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하산은 내전을 피하기 위해 칼리프 직을 포기했고, 무아위야는 곧 수니파의 지지를 얻어 이슬람 전역의 통치권을 쥐게 됩니다.
세습 왕조의 시작 : 야지드의 후계 지정과 제도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생전에 후계자를 공식 지명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네 명의 정통 칼리프는 모두 공동체의 합의와 선출로 선출되었으며, 이는 지도자의 덕성과 자격을 중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아위야는 이 전통을 깨고, 아들 야지드 이븐 무아위야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습니다. 이 결정은 칼리프 제도를 세습 왕조 체제로 전환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이슬람 통치 체제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로써 우마이야 왕조(661~750년)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됩니다.
수도의 이전 : 메디나에서 다마스쿠스로
무아위야는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기존 이슬람 중심지였던 메디나 대신, 자신의 권력 기반인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았습니다. 다마스쿠스는 당시 로마-비잔틴 문명의 영향을 받은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로, 광대한 제국의 효율적 운영에 적합한 입지였습니다.
수도 이전은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라, 아라비아 중심 이슬람에서 제국 중심 이슬람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이슬람은 더 이상 한 지역의 종교 공동체가 아닌, 다문화, 다민족 제국의 이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제국의 확장 : 아랍어의 통일과 영토 확장
무아위야와 그 후계자들은 정복과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제국 전역에서 아랍어를 공용어로 채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 통일이 아니라, 제국 내부의 정체성과 행정 일관성을 강화하는 핵심 정책이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는 이슬람 제국을 유례없는 규모로 확장시켰습니다. 서쪽으로는 스페인(알 안달루스),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통제했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이 확장은 이슬람 문명의 전파와 융합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몰락과 아바스 왕조의 등장
하지만 방대한 제국은 내부의 불만과 권력 집중으로 인해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비(非)아랍 무슬림에 대한 차별, 세금 문제, 그리고 지방 총독들의 반란은 왕조의 권위를 약화시켰습니다.
750년,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 아바스 가문이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아바스 왕조)를 수립합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잔존 세력은 북아프리카를 거쳐 스페인으로 도망쳐 코르도바에서 별도의 우마이야 왕조(756~1031년)를 세우게 됩니다.
우마이야 왕조가 남긴 유산
우마이야 왕조는 단순한 정치 체제를 넘어서, 이슬람 제국을 하나의 제국적 문명으로 정립한 시기였습니다. 수도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한 통치 체계, 공용어 아랍어의 확산, 세습 왕조 체제의 도입 등은 이후 이슬람 세계의 운영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록 그 통치는 90년 남짓이었지만, 우마이야는 이슬람을 중동 종교에서 세계 종교로 확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왕조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