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아우구스티누스와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브리튼 선교 : 수천 명의 브리튼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다
“우리의 형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만 명 이상의 앵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_그레고리우스 1세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게 보낸 편지 (598년)
영국에 기독교가 전파되기까지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맞물린 복잡한 역사적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6세기 말,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와 수도원장이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만남은 브리튼 기독교화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룹니다. 본 글에서는 이들의 선교 여정을 중심으로, 어떻게 앵글로색슨족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브리튼 선교를 결심하다
전설에 따르면, 교황이 되기 전 그레고리우스는 로마 시장에서 금발의 소년 노예들을 보고 그들의 출신을 물었습니다. “앵글족(Angli)“이라는 답을 들은 그는 “Non anglii sed angeli” — 즉, “이들은 앵글이 아니라 천사(Angel)로다”라는 말을 남기며, 이 민족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단순한 전설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켄트의 왕 애설버트가 기독교도 프랑크 왕녀 베르타와 결혼한 이후, 로마에 그녀가 브리튼 개종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러한 정치적·종교적 배경을 토대로 브리튼 선교를 실질적으로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브리튼을 향한 첫 발걸음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이 소속된 수도원의 원장이자 신뢰하던 인물인 아우구스티누스를 브리튼 선교의 책임자로 임명합니다. 그는 40명의 수사들과 함께 596년에 여정을 시작했으나, 프랑크 지역(갈리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예상보다 험난한 여정에 겁을 먹고 다시 로마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레고리우스는 이들을 설득해 재차 파견했고, 결국 597년 아우구스티누스 일행은 오늘날의 영국 남동부, 켄트 지역에 도착합니다. 이들이 상륙한 장소는 템즈강 하구 근처로 추정되며, 이는 이후 영국 교회사의 시발점이 됩니다.
켄트의 애설버트 왕과의 만남, 그리고 기독교로의 개종
켄트 왕국은 당시 브리튼 남부에서 가장 강력한 앵글로색슨 왕국 중 하나였습니다. 애설버트 왕은 외교적 판단과 프랑크 왕녀 베르타의 영향으로 인해, 로마에서 온 선교단을 환영하고 직접 만났습니다. 그는 이교도였지만 선교사들을 자신의 왕궁 근처에 머무르게 하였고,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브리튼 내 선교 활동을 허락했습니다.
같은 해, 597년의 크리스마스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대규모 세례식을 열었으며, 이때 수백 명의 백성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애설버트 왕 역시 이보다 앞서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브리튼 기독교 전파의 중요한 분기점이 됩니다.
캔터베리의 시작과 교황의 지원
선교의 본거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켄트의 중심 도시였던 캔터베리를 택했습니다. 이는 훗날 영국 성공회 대주교좌인 ‘캔터베리 대주교’의 시작이 되는 중요한 선택이었습니다.
601년, 교황 그레고리우스는 선교 활동의 성과를 인정하며 네 명의 추가 수사를 브리튼에 파견했습니다. 이들이 가져온 중요한 선물 중 하나는 ‘팔리움’이라 불리는 양모 장식띠로, 이는 교황이 대주교에게 수여하는 공식적인 상징물이었습니다. 이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브리튼 교회의 공식 수장으로서의 위상을 얻게 됩니다.
파울리누스와 노섬브리아 선교의 확대
601년에 새롭게 합류한 선교사 중 파울리누스는 이후 북부의 강력한 앵글로색슨 왕국인 노섬브리아로 파견됩니다. 그의 주요 임무는 애설버트 왕의 사위이자 노섬브리아의 에드윈 왕을 개종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파울리누스는 627년 에드윈 왕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며, 선교 활동은 남부 켄트를 넘어 북부 지방까지 확장됩니다.
이는 단지 종교적 변화뿐 아니라, 브리튼의 정치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기독교의 전파는 단순한 종교 수용을 넘어 문서 행정, 건축, 교육 등 다양한 사회 구조의 변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한 사람의 결단이 역사를 바꾸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선교 결단, 아우구스티누스의 헌신, 그리고 애설버트 왕의 개종은 단순한 선교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이는 유럽 대륙과 섬나라 브리튼 사이의 종교적, 문화적 가교가 되었고, 훗날 영국이 기독교 국가로 자리 잡는 기초를 마련한 사건입니다.
오늘날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시작된 역사는 여전히 영국 종교의 중심을 이루며, 이들의 여정이 결코 잊혀지지 않을 이유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