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크리스마스의 기원 : 12월 25일은 왜 예수 탄생일이 되었을까?
“그들은 그 날을 ‘정복당하지 않은 자의 탄생일’이라 부른다. 우리 주님만큼 정복당하지 않은 이가 누가 있는가?”
_요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 <지점과 분점에 관하여>
매년 12월 25일,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합니다. 눈 덮인 마구간,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 목자들과 동방박사, 따스한 촛불과 캐롤… 이처럼 익숙한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실제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이 글에서는 12월 25일이 어떻게 예수의 탄생일로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이 결정이 기독교 역사와 고대 로마 문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깊이 있게 살펴봅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 4세기 달력의 표기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예수 탄생일’의 공식 기록은 서기 354년, 로마의 필경사였던 푸리우스 디오니시우스 필로칼루스(Furius Dionysius Philocalus)가 편집한 달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달력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등장합니다:
“Ⅷ kal. Ian. natus Christus in Betleem Iudaeae”
(1월 1일의 여덟 날 전, 즉 12월 25일에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남)
이는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로 기록된 최초의 결정적 증거로 평가되며, 4세기 중반까지는 이 날짜가 이미 기독교 세계에서 통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2월 25일의 선택: 우연일까, 의도된 상징일까?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로 선택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날짜에는 기독교 신학적 상징성과 로마의 이교 전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동지와 ‘정복되지 않는 태양(Sol Invictus)’
고대 로마에서는 12월 25일을 ‘솔 인빅투스(Sol Invictus)’,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의 축일로 기념했습니다. 이는 겨울 동지 직후,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자, 태양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날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점점 세력을 넓혀가던 시기에, 기존 이교 축일을 대체하거나 흡수하는 방식은 흔한 전략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의 태양’으로 상징하는 표현도 있었기에, 태양신 축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재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3월 25일과 수태 개념
초기 기독교인들은 3월 25일을 천지 창조의 날, 그리고 동시에 예수의 수태일(성모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날)로 보았습니다. 3월 25일로부터 정확히 아홉 달 뒤가 바로 12월 25일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탄생일을 신학적으로 계산한 결과로 이 날짜가 선택되었다는 해석도 설득력을 가집니다.
다른 전통의 공존: 1월 6일 ‘주현절’의 의미
오늘날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로 고정되어 있지만, 모든 기독교 전통이 이 날짜를 동일하게 중요하게 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방교회(동방 정교회)를 중심으로 한 많은 지역에서는 1월 6일을 ‘예수의 현현’을 기념하는 날, 즉 주현절(Epiphany)로 더욱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날은 예수가 세례를 받거나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은 사건을 기념하는 것으로, 일부 교회 전통에서는 여전히 예수 탄생일을 1월 6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4세기 이후에도 12월 25일과 1월 6일은 지역과 교단에 따라 병행되거나 경쟁하는 축일로 자리잡았던 것입니다.
중세를 거치며 형성된 ‘현대적 크리스마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구유 옆의 동물들, 눈 내리는 성탄절 풍경, 캐롤과 크리스마스 트리는 사실 중세 이후에 등장한 요소들입니다.
성경에는 소나 당나귀가 예수 탄생 당시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이 명확하지 않지만, 중세 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이사야서 1장 3절의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안다”는 구절을 토대로 상징적으로 이들을 등장시켰습니다.
또한, 눈 덮인 풍경은 중세 유럽의 겨울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며, 목자들과 양떼의 모습도 점점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이미지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날짜보다 중요한 ‘의미
12월 25일이라는 날짜는 단지 달력상의 한 날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과 역사, 그리고 로마 제국의 문화적 흐름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이 날짜의 선택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로마 세계 속에서 종교적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한 상징적 결정이었습니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방식은 시대와 지역, 전통에 따라 다양하지만, 그 근간에는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의미가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