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마사다의 최후: 로마에 대항한 유대인의 마지막 항전
“그들은 참으로 불행한 이들이었으니, 그 비참한 처지로 인해 자기 아내를 죽여야만 했던 것입니다.”
_요세푸스, <유대인 전쟁>
유대 전쟁의 끝자락에서… 마사다 요새의 저항
기원후 73년 4월 15일, 유다 지방의 사해 서편 고지대, 해발 400미터 언덕 위에 자리한 마사다 요새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유대인 남녀노소 960명이 집단 자결을 택한 이 사건은 단순한 전투의 패배가 아니라, 로마 제국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자, ‘자유’라는 가치를 향한 비극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들은 ‘시카리(Sicarii)’라는 무장 급진파였으며, 유대-로마 전쟁(66~70년)에서 끝까지 싸운 반란 세력이었습니다. 지도자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가 이끈 이들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도 무기를 놓지 않았고, 유다 사막의 외딴 요새 마사다를 거점 삼아 로마의 통치에 맞서 싸웠습니다.
마사다 요새, 천혜의 방어 요충지
마사다는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해로데 대왕이 기원전 1세기경 건설한 이 요새는 높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적군이 접근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내부에는 대형 곡물 창고, 저수 시설, 창문 없는 저장고가 마련되어 있었고, 몇 년간 자급자족이 가능할 만큼 식량과 물이 풍부했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유일한 길은 ‘뱀의 길(Snake Path)’로 불리는 좁고 험한 길이었고, 이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는 데 이상적이었습니다. 엘리아자르와 시카리 전사들은 이곳에서 철저한 방어전을 계획하며 장기전에 대비했습니다.
로마의 집요한 포위전: 끝까지 추적한 제국의 의지
그러나 로마 제국은 유다 반란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하려 했습니다. 72년, 티투스 황제의 명을 받은 루키우스 플라비우스 실바(Lucius Flavius Silva) 휘하의 제10군단은 마사다를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공학적 기술력을 동원한 장기 포위 작전이었습니다.
로마군은 마사다 요새 북서쪽 절벽 아래에서부터 거대한 공성 경사로(ramp)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200미터 높이의 절벽 위로 올라가기 위해 수개월간 돌과 흙을 쌓아 경사를 만든 것입니다. 이 작업은 유대인 포로들을 동원해 진행되었으며, 시카리 반군은 동족을 해칠 수 없어 방어할 수 없었습니다.
봄이 오자, 로마는 이 경사로를 통해 공성탑과 투석기, 대형 망치 등을 끌어올렸고, 마침내 요새 성벽을 돌파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죽음을 선택한 자유인들: 엘리아자르의 연설
패배가 눈앞에 닥쳤을 때, 지도자 엘리아자르는 전사들과 시민들에게 중대한 결단을 제안합니다. 그는 로마군의 손에 포로가 되기보다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자고 호소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요세푸스의 저작 《유대 전쟁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로마의 노예로 살아가기보다는, 자유인으로 죽기를 택하자. 이 마지막 순간마저 우리 의지로 맞이하자."
그는 제비를 뽑아 10명의 전사를 선정했고, 이들이 남은 이들을 차례로 죽인 뒤, 마지막 한 사람이 자결하는 방식으로 집단 자결이 이루어졌습니다. 어린이, 여성, 노인까지도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 이 사건은 인류사에서 가장 극적인 집단 항전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로마군의 침공과 침묵으로 가득 찬 요새
다음 날, 성벽을 뚫고 마사다 요새에 들어선 로마군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전투를 준비한 반군을 상상했지만, 마주한 것은 죽은 시체들뿐이었습니다. 유대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당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로마인들은 태연하게 죽음을 경멸한 그들의 태도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생존자는 극소수였으며, 일부 여성과 어린이만이 숨겨진 동굴에 숨어 있다가 발견되었습니다. 로마는 마사다 함락을 승리로 기록했지만, 이곳은 유대인의 불굴의 정신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증명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마사다, 자유를 향한 최후의 불꽃
마사다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쟁의 일화가 아닙니다. 이는 제국의 압도적 힘에 맞선 한 민족의 정체성과 신념,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시카리들이 선택한 죽음은 비극이자 위대한 상징으로 남았고, 유대인의 정신사에서 독립과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유적지이며, 이스라엘 군인들이 선서식을 올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사다는 다시는 무너지지 않으리라(Masada shall not fall again)”는 문구는 이곳이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임을 상기시켜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