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율리우스력 : 우리가 현재 쓰는 달력의 시작
“카이사르는 최고의 철학자와 수학자들을 소집했다…”
_플루타르코스, <카이사르의 일생>
고대 로마인들은 매우 체계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었고, 그 일상은 계절별 축제와 행정관 선거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날짜 계산은 로마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초기 로마의 달력은 오늘날의 달력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대 로마 달력의 문제점과 그것을 해결하려 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개혁,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쉽게 풀어 설명합니다.
로마 초기 달력의 한계: 짧은 음력과 불안정한 날짜
초기 로마 달력은 355일짜리 음력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양력(태양력)**보다 약 10일 짧은 구조였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절과 실제 날짜 사이의 차이가 점점 벌어졌고, 로마의 축제나 행정적 행사들이 제 시기에 맞지 않게 되는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당시 로마의 종교 최고위직인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는 해마다 윤달 또는 추가 날짜를 삽입하여 날짜를 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종교 권력의 정치적 악용: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역할
문제는 이 날짜 조정 권한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기원전 1세기경, 정치가들이 폰티펙스 막시무스를 겸직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이 권한은 단순한 달력 조정 기능을 넘어 정치적 무기로 변질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해에는 동료의 임기를 늘리기 위해 날짜를 추가하거나, 반대로 정적의 임기를 줄이기 위해 날짜 추가를 생략하는 식의 조작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시간 자체가 정치적인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달력 개혁: 과학의 힘을 빌리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인물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그는 기원전 63년 폰티펙스 막시무스로 선출되었지만, 본격적인 달력 개혁은 기원전 46년, 로마로 복귀한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카이사르는 이집트 출신의 **천문학자 소시게네스(Sosigenes)**의 조언을 받아, 당시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태양력 기반의 달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입니다.
율리우스력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1년 = 365.25일
- 4년에 한 번 윤년을 둬 하루를 추가
- 계절과 날짜의 불일치를 크게 줄임
이 개혁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였고, 당시 로마 제국 전역에 적용되었습니다.
소시게네스의 작은 실수와 부활절의 혼란
그러나 소시게네스의 계산에는 작은 오차가 있었습니다. 그는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계산했지만, 실제 태양년의 길이는 365일 5시간 48분 46초였습니다. 이 11분 14초의 오차는 한두 해 동안은 별 문제가 없었지만, 수백 년이 지나면서 누적되었고 결국 1500년대 중반이 되면 10일 정도의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그 결과, 부활절 같은 중요한 기독교 절기가 점점 앞당겨져 계절과 종교적 시기가 어긋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레고리력의 도입: 오늘날 달력의 완성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Pope Gregory XIII)**였습니다. 그는 1582년, 율리우스력의 누적 오차를 바로잡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 그 해의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조정 (10일 삭제)
- 윤년 규칙을 수정: 4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이지만, 1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평년, 단 400으로 나누어 떨어지는 해는 윤년
- 이를 통해 오차를 천년에 하루 수준으로 줄임
이 새로운 달력이 바로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이며,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 달력의 원형입니다.
정치와 과학이 만든 달력의 역사
오늘날 우리는 별다른 의식 없이 달력을 넘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그 달력의 이면에는 정치적 권력의 작용, 그리고 천문학적 계산의 진보가 담겨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소시게네스의 시도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레고리오 교황의 수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시간 개념조차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릅니다.
고대 로마의 달력 개혁은 단순한 날짜 정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곧 사회를 통제하는 일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남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