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인 ‘히즈라’가 무슬림 원년이 된다.”
622년,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메카를 몰래 떠나 북쪽 도시 메디나로 향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메디나 부족들의 초청을 받아 그곳의 분쟁을 조정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로 나선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헤지라(Hijra, 이주)’라 불리며, 이슬람교에서는 이 날을 기점으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무슬림들이 사용하는 히즈라력(이슬람력)은 바로 이 해, 622년부터 시작됩니다.
헤지라는 종교적 박해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슬람 공동체가 정치적 실체로 첫 발을 내디딘 순간이기도 합니다. 메카에서는 소외받았던 무함마드와 초기 신자들이 이제는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로 나아간 것입니다.
610년, 무함마드는 처음으로 히라 산에서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 신비로운 체험을 곧바로 외부에 알리지는 않았습니다. 아내 카디자와 가까운 가족, 친구들에게만 이 사실을 공유하며 조심스럽게 신앙의 길을 닦아나갔습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후, 그는 다시금 계시를 받았고, 이번에는 대천사가 그에게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제 무함마드는 단순한 명상자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설교는 단순한 종교적 메시지를 넘어, 가난한 자, 고아,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사회적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무함마드의 메시지는 메카의 기득권층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메카는 카바 신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상업적 중심지였습니다. 신전 안에는 아라비아 전역의 다양한 부족 신상들이 안치되어 있었고, 이를 숭배하기 위해 모여드는 순례자들이 메카 경제의 핵심 자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함마드는 오직 하나의 신만을 믿으라고 주장하며, 이 우상 숭배 관행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메카에서 조롱과 모욕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부족 사회의 관습상, 쿠라이시 족 출신인 그를 공개적으로 해칠 수는 없었습니다. 무함마드는 이 시기에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고, 오히려 점차 더 많은 하층민, 노예, 여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어갔습니다.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단순한 종교 지도자가 아닌, 정치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게 됩니다. 그는 부족 간의 갈등을 조정하며 ‘움마(Ummah)’, 즉 무슬림 공동체를 구성했습니다. 이 공동체는 단지 신앙의 연합체가 아닌, 신의 뜻에 따라 정치적 질서와 사회 윤리를 세운 제정일치의 조직이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법률과 규범, 종교 의례를 정비하며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갈등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비판적이었던 메디나의 유대인 공동체는 점점 그와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 중 일부는 메디나에서 추방되거나 전투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후대 이슬람 역사 속 유대인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논쟁 지점이 됩니다.
무함마드는 신앙의 자유뿐 아니라 이슬람 공동체를 방어하고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력을 정당화했습니다. 그는 신자들에게 “믿지 않는 자와 싸우는 것”이 종교적 의무라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하드’는 단순한 전쟁이 아닌, 신을 위한 노력이라는 넓은 의미도 포함하지만, 당시 무함마드가 수행한 성전은 외교와 군사력을 통해 이슬람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 결과, 630년 무함마드는 수많은 추종자들과 함께 메카로 진군했고, 대규모 전투 없이 도시를 평화적으로 정복했습니다. 그는 카바 신전 안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그곳을 오직 알라를 위한 신성한 장소로 재정립했습니다. 그리고 메카 시민들과 화해함으로써, 종교적 정통성과 정치적 권위를 모두 획득하게 됩니다.
630년의 메카 정복 이후, 무함마드는 다시 메디나로 돌아가 공동체를 이끌다가 632년,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신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이미 움마는 하나의 체계를 갖춘 강력한 종교 공동체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무함마드의 후계자들인 ‘칼리프’들은 그의 유산을 계승해 이슬람을 중동, 북아프리카, 유럽 일부까지 빠르게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그의 생애는 단순한 예언자의 전기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와 문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조직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입니다. 종교, 정치, 사회가 긴밀하게 엮인 이슬람 공동체는 무함마드라는 인물의 비전과 결단력 속에서 태어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함마드의 메카 탈출과 메디나에서의 새로운 출발, 그리고 메카 정복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은 이슬람교가 단순한 신앙을 넘어 하나의 문명으로 거듭나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무슬림이 매년 ‘헤지라’를 기념하며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이슬람은 단 한 사람의 계시에서 시작되어, 단기간에 하나의 세계 종교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공동체(움마)와 지도력, 그리고 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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