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바카르는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했지만 나이가 어림을 가련히 여겨 목숨만은 살려주었다.” _<무명이 발렌시아누스의 연대기>
476년 8월 23일,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야만족 용병 출신의 장군 오도바카르(Odoacer)에 의해 폐위당하게 됩니다. 로물루스는 당시 겨우 십대였으며, 그 배후에는 그의 아버지이자 권력 실세였던 장군 오레스테스가 있었습니다. 오도바카르는 반란을 일으켜 오레스테스를 처형하고, 로물루스를 나폴리 인근의 저택에 연금하며 사실상 황제 지위를 제거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반적으로 서로마 제국의 공식적인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간주됩니다.
오도바카르는 로물루스를 폐위시킨 후, 동로마 제국 황제 제노(Zeno)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그는 이제 로마 제국에 두 명의 황제는 필요 없으며, 자신이 동로마 황제를 대표해 이탈리아를 통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때 이탈리아는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남은 영토였으며, 오도바카르는 스스로 황제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총독(Patrcian)’이라는 타이틀로 로마의 행정을 맡게 됩니다.
제노는 로물루스를 원래 불법적인 왕위 찬탈자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오도바카르의 제안을 수용합니다. 이로써 로마 제국은 하나의 황제, 동로마 황제만을 중심으로 유지되며, 서방에서는 황제라는 직책이 사라지게 됩니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475년 10월, 아버지 오레스테스 장군의 정치적 야망에 의해 제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진짜 황제였던 율리우스 네포스(Julius Nepos)는 강제로 폐위되었고, 로물루스는 명목상 황제 역할만을 하며 실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0개월 만에 오도바카르의 쿠데타로 오레스테스는 체포되어 처형되고, 로물루스는 정치적 무게감이 없다는 이유로 생명만은 부지하게 됩니다.
로물루스는 폐위 이후 나폴리 근처의 루케룸(Lucullus) 저택에서 연금 상태로 조용히 여생을 보내게 되며, 그에 대한 사후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로서, 그는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제국의 최후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억되게 됩니다.
476년의 사건은 단순한 권력 교체가 아닌, 로마 제국의 서방 지배구조 자체가 무너졌음을 뜻합니다. 동로마 황제 제노는 형식적으로 이탈리아 영토가 여전히 제국의 일부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로마의 황제 권위는 이 시점부터 서유럽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이 사건은 전통적으로 고대 세계의 종말과 중세, 즉 암흑시대(Dark Ages)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오도바카르의 통치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 상징성과 역사적 전환점으로서의 의미는 매우 큽니다.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의 퇴위는 단순히 한 명의 소년 황제가 권좌에서 밀려난 사건이 아닙니다. 이는 수 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라는 체계의 붕괴이자, 중세 유럽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전환점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476년은 ‘고대의 종말’로 교과서에 실리며, 오도바카르의 쿠데타는 유럽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정권 교체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로마의 마지막 불빛이 꺼지던 그 순간, 유럽은 이제 전혀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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