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에데사에서 페르시아에 패해 포로가 된다.”
로마 제국의 긴 역사에서 3세기만큼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시대는 드뭅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3세기 위기(Crisis of the Third Century)’로 부르며, 제국의 존립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격변의 시대로 평가합니다. 게르만족의 침입, 내부 반란, 경제적 혼란이 겹쳐 로마는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특히 동방에서 등장한 강력한 신흥 세력,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제국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한 이후로 페르시아는 수세기에 걸쳐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224년, 사산 왕조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아르다시르 1세로 시작된 이 왕조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영광을 되살리고자 했습니다. 사산 왕조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수립하며 군사와 행정을 정비했고, 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소아시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까지 되찾으려는 야심을 품게 됩니다.
사산 왕조 2대 왕인 샤푸르 1세는 이러한 야망을 행동으로 옮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로마 동부 국경을 넘어 수차례 침입을 감행했고, 이는 곧 두 강대국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충돌로 이어졌습니다.
258년, 샤푸르 1세는 로마 제국의 동맹국이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던 아르메니아를 정복합니다. 이어서 그는 지중해 연안을 향해 진격했고, 당시 시리아의 중심 도시였던 안티오크까지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안티오크는 동부 로마의 핵심 거점이었기에, 이 점령은 로마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에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는 직접 동방 전선으로 출정해 반격을 가했습니다. 그는 안티오크를 탈환하고 샤푸르의 군대를 유프라테스강 너머로 몰아내며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60년, 발레리아누스는 오늘날 터키의 도시 우르파(고대 에데사) 근처에서 샤푸르 1세와 다시 맞붙습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대패했고, 황제 자신이 샤푸르에게 생포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로마 제국 역사상 유일하게 황제가 적국의 포로가 된 사건이었으며,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굴욕이었습니다.
샤푸르는 발레리아누스를 포로로 잡은 뒤 공개적인 조롱과 모욕을 가했다고 전해집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황제를 자신의 발판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 발레리아누스는 포로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죽음은 제국 전역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발레리아누스의 패배 이후 로마 제국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브리튼과 갈리아에서는 독립을 선포한 자들이 등장했고, 동쪽에서는 ‘30인 참주’라 불리는 권력자들이 각지에서 황제를 자처하며 내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로마의 동방 영토를 지키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팔미라의 아랍계 왕 오다이나투스입니다. 그는 로마의 동방 속주를 수호하며 샤푸르 1세의 확장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261년에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어 사산군을 격퇴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그에게 ‘동방의 총독’ 칭호를 부여하며 지지를 보냈습니다.
오다이나투스 사후, 그의 미망인 제노비아는 팔미라 제국을 수립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으나, 274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이 지역은 다시 로마의 통제 아래 들어갔습니다.
3세기 중반, 로마는 외침과 내란, 경제 위기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를 거치며 제국은 여러 개혁을 모색하게 되었고, 훗날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제국 체제는 다시금 정비됩니다.
샤푸르 1세와의 전쟁은 로마 제국의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었으며, 동시에 외부 세력과의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도 로마가 어떻게 생존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 극적인 충돌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고대 세계의 힘의 균형이 얼마나 복잡하고도 예민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54. 니케아 공의회 : 기독교 역사상 첫 공의회 (0) | 2025.04.15 |
---|---|
53. 콘스탄티누스의 밀비우스 전투 : 십자가 아래의 황제 (0) | 2025.04.14 |
51. 바르 코크바의 반란 :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진입과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0) | 2025.04.03 |
50.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즉위 : 로마 제국의 전략적 전환 (0) | 2025.04.03 |
49. 콜로세움의 역사 : 고대 로마의 위대한 건축 유산 (0) | 2025.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