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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티투스의 유대 정복 : 예루살렘이 함락되다

역사학

by danielsung 2025. 4. 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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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반란을 강제 진압한다.”

 

 

 

 

예루살렘

 

 

 

 

유대인의 저항과 로마의 통치

 

기원전 4년, 유대는 로마 제국의 직접 통치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종교적 정체성이 강하고 민족적 자긍심이 뿌리 깊은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로마 제국의 또 하나의 속주로 흡수되기를 거부했고, 이는 긴장과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66년 유대인들은 로마에 대한 전면적인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이는 훗날 '제1차 유대-로마 전쟁'으로 불리게 되는 역사적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전제군주 체제로 안정화되던 중이었고, 유다 지역의 반란은 로마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위협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와 아들 티투스의 진압 명령

 

초기 전쟁에서 로마는 북부 유다 지역의 반란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공을 세운 장군 베스파시아누스는 69년에 황제로 즉위한 후, 아들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을 함락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시점부터 예루살렘은 철저한 포위에 들어갔고, 도시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됩니다.

 

포위 작전은 무려 다섯 달이나 이어졌습니다. 로마군은 공성전에 능숙했지만, 예루살렘은 강력한 방어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도시 내부에는 각기 다른 세력이 지배하는 구역들이 존재해 방어도 치열했습니다. 성벽은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견고해졌습니다.

 

 

 

 

도시 안의 혼란과 극한의 고통

 

포위 초반부터 식량 부족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인구는 약 6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중 약 2만 5천 명은 시몬 바르 기오라와 기샬라 출신 요한이 이끄는 무장 반란군이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보급이 끊기면서 굶주림은 곧 절망으로 이어졌고, 수만 명의 시민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시를 탈출하려는 시도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굶주림에 미쳐 달아나려 한 사람들은 로마군에 붙잡혔고, 이들은 예루살렘 방어자들이 보는 앞에서 십자가형을 당했습니다. 이는 로마군의 심리전이기도 했으며, 도시 내부의 사기를 철저히 꺾기 위한 잔인한 방식이었습니다.

 

 

 

 

성전의 파괴와 유대 신앙의 상징적 상실

 

70년 8월, 로마군은 마침내 유대교 신앙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성전, 곧 '제2성전'으로 돌입했습니다. 이곳은 유대교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야훼와의 연결 지점이라 여겨지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완전히 불타버렸고, 내부의 성기들은 약탈되었습니다.

 

성전의 파괴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의 정체성을 겨냥한 심리적 타격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교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되며, 이후 유대인은 더 이상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회당 중심의 신앙 체계로 전환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최후와 유대인들의 운

 

성전이 무너지자, 살아남은 반란군은 도시 내 하수도나 은신처에 숨어들었지만, 결국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70년 9월 7일, 예루살렘은 공식적으로 항복했습니다. 반란의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았는데, 기샬라 출신 요한은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시몬 바르 기오라는 로마로 압송되어 개선 행렬에서 전시된 후 공개 처형당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약 9만 7천 명의 유대인이 포로로 끌려갔으며, 그중 상당수는 로마 제국의 기념비적인 건축물, 콜로세움 건설에 동원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은 단지 하나의 도시가 무너진 사건이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의 미래를 뒤바꾼 역사적 대참사였습니다.

 

 

 

예루살렘 함락의 역사적 의미

 

70년 예루살렘 함락은 단순한 전쟁의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이 갖고 있던 신앙의 중심이 무너지는 사건이었고, 동시에 로마 제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반란을 진압하고 권력을 과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참상 속에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신앙을 계승했고, 흩어진 땅에서도 공동체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사라졌지만, 유대인의 정신은 그 잿더미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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